연재 칼럼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에게 철학은 왜 필요한가

콘2조아 2025. 5. 10. 19:32

서론: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과 철학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현대인이 풀어나가야 하는 필수적인 과제를 보여주고 있다. 기업의 잘못된 가치판단으로, 정부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까닭으로 독성이 있는 가습기 살균제가 대한민국 곳곳에 유통되었고 그 피해는 재난적이었으며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것을 불운한 사건으로 여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피해 주체와 객체가 명확한 악행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진위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사건의 원인이 우리 인간에게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어째서 누군가가 가습기 살균제가 제작되고 판매되지 않도록 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공학자, 혹은 넓은 범위에서 지식인에게 철학은 무슨 이유로 필요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철학의 역할 1: 행동 규범 설정 (칸트)

      먼저, 철학을 이용하면 지식인은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 기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칸트의 철학은 개인의 행동에 대한 규범을 제시한다. 개인이 어떻게 행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칸트는 ‘~를 위해서 ~를 한다’는 가언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를 하라’는 정언 명령에 의해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개인의 도덕적 행동이란 상황에 휩쓸려 특정한 조건에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상황에서도 성립하는 보편타당한 도덕법칙에 의해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 칸트의 윤리설을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응해 보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사익이라는 목적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기업을 하나의 주체로 봤을 때 기업은 사익만을 위해서 유해한 제품을 만들고 유통했다. 이 경우에 이 기업의 행동은 소비자의 안전이라는 보편타당한 법칙에 어긋난다. 칸트의 윤리학에 의거하면 개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목적에 경향되지 않고 어디에서나 성립하는 도덕 법칙을 기반으로 떳떳한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칸트의 도덕법칙과 같은 나름의 행동규범을 받아드리거나 철학을 통해 자신만의 규율을 만들어 그것에 적합하게 행한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옳은 행동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의 역할 2: 사회적 책임 인식 (마르크스)

      두 번째로, 지식인은 철학을 통해 자신이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생각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전체 계를 생각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한 예로 1917, 2월 러시아 혁명을 들 수 있다. 2월 혁명은 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러시아와 독일과의 전쟁이 길어지자 피로감에 지친 러시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혁명이다. 혁명은 성공하여 결국 니콜라이 2세가 자진 퇴위한다. 이제 그다음 문제는 누가 러시아를 지도하냐는 것이었다. 혁명 이후 당시 러시아에는 입헌군주제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자유주의 성향의 임시정부가 있었고 그와 더불어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라는 러시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는 일종의 군중 의회 조직이 있었다. 다수의 사회주의자로 구성되어 있던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는 국가 권력을 자신들이 쟁취해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로 그 권력을 넘겨준다. 그 이유에는 그들이 믿고 있었던 마르크스주의가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번 2월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마르크스 주의에 따라 그들은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봉건제가 망하고 자본주의가 탄생하고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발전한 다음에 비로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가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해 지금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가 권력을 잡으면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장교나 지주들과 같은 부르주아들이 문제를 일으키리라 생각해 임시정부가 러시아를 다스리도록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하지 않은 때인 10월 임시정부가 레닌에 의해 점령되고 최초의 사회주의국가가 탄생하지만, 그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이 믿는 마르크스 철학에 근거하여 현재의 이익이 아닌 전체적인 틀을 보고 그들의 행동을 결정했던 것이다.

철학의 역할 3: 철학의 대화적 특성

      마지막으로, 지식인은 개인적 가치에서 벗어나 이익 주체 간의 대화와 교류를 통해 자본주의 시장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개인의 시장이 아닌 공동체의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철학의 중요한 특징은 물음과 논리 그리고 사상들 간의 교류이다. “해는 왜 뜨고 지는 것일까?” “왜 꽃은 피우고 시드는 걸까?”와 같은 물음 속에서 철학의 시작인 자연철학이 탄생하였다. 현상에 대한 궁금증이 철학의 시작인 것이다. ‘왜’라는 질문에는 답이 필요하고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 철학은 논리학을 발전시켜왔다. 자신의 궁금증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는 것이다. 그리고 철학은 혼자 중얼거리는 것만으로는 발전하지 않았을 거다. 철학은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 지식을 교류하며 발전해 왔다. 단기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나에서처럼 철학자들 중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를 둘러싸고 논쟁을 펼쳤다. 장기적으로는 사회와 철학, 철학과 철학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했다. 플라톤주의, 반플라톤주의, 합리주의, 경험주의, 공리주의, 이성주의 등등 철학은 발전과 퇴보와 재평가를 거듭하고 시대를 넘나들며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도 경제의 주체가 되는 지식인들이 철학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서로 지식을 나누고 의사결정을 논의해 나간다면 장기적으로 사익보다 이로운 가치를 추구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지식인과 철학의 필연적 관계

      이와 같이 철학은 행동 규정을 정해 개인적 의무를 지우고, 사회적 상황을 고려한 선택을 하게 하며, 철학적 특성인 교류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인에게  필수적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비추어 봤을 때, 지식인들의 행동이 사회에 미칠 파급력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지식인들이 철학적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미래를 꿈꿀 수 없을 것이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철학과 지식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참고문헌

구연상, 가습기살균제 사건, 재난(참사)인가 악행인가』, 한국동서철학회논문집 『동서철학연구』제89호, 2018. 9.

백도명 (2016).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돌아보며. 의료와 사회(5), 56-59

송충기, 김남섭 외, 『세계와 시대의 서양 현대사』, 아카넷, 2009

서용순,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 두리미디어, 2006